누가 내 채굴기를 옮겼을까?

시사점

  • 채굴, 수익성이 가장 높은 산업 중 하나로 꼽혀
  • 시장에 조기 진입한 채굴업자들, 총수입의 50% 이상을 손쉽게 챙길 수 있지만 높아진 진입장벽이 후발 주자들의 경쟁 참여를 제한
  • 글로벌 반도체 공급부족과 수요 변동성이 채굴기 품귀 유발

채굴은 수익성이 매우 높은 산업으로 인식되었지만 채굴업자들의 수익 모델은 특히 암호화폐 시장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러한 불투명성은 채굴업자들이 부의 수레바퀴를 24시간 돌리며 디지털 골드를 산더미처럼 쌓아 올리고 있다는 과장되고 동화 같은 이야기에 불을 지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수레바퀴를 돌리는 데도 비용이 든다. 채굴업자들의 수익성은 채굴장비의 확보 비용에 크게 좌우된다.

수급 불균형

채굴 산업에서 작용하는 복잡다단한 힘은 결국 수요와 공급 모델로 귀착된다. 채굴장비의 품귀 현상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부족 때문이다. 반도체 제조사들은 게임과 모바일, 암호화폐 채굴 등 다양한 신흥 섹터에서 수요가 증가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고 설령 예상했더라도 모든 반도체 제조사가 반도체 수요의 가파른 증가를 쌍수를 들고 반기지는 않는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TSMC만 하더라도 암호화폐 채굴과 관련된 높은 변동성 때문에 채굴 섹터를 위해 생산능력을 증설하는 것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TSMC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삼성 역시 수요가 보다 안정적인 기존 섹터에 대한 공급을 우선시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현재의 시장 상황에서는 새로운 채굴장비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주요 채굴기 제조업체들은 내년 연말까지도 넘쳐나는 주문량을 감당하기 벅찬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상상황은 자금력이 달리는 소규모 영세 채굴업자들을 시장에서 밀어내고 자금력이 풍부한 업체 간에 통합을 가속화하고 있다. 높은 수익성을 쫓아 새롭게 시장에 진입한 후발주자들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웃돈을 주고서라도 중고 채굴장비를 구입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채굴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구형 채굴장비의 귀환

채굴장비 공급난이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인 수치를 예로 들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가령 전기료 상한을 $0.06/kWh로 잡더라도 일반적인 채굴기 사용 시 발생하는 총비용은 채굴되는 코인 한 개당 $40,000를 훌쩍 넘어갈 수 있다. 각 처리 단계마다 발생하는 고정 비용인 순직접현금비용(Net Direct Cash Cost, C1)은 채굴 생산이 제로(0)일 때 최소 1만 달러에서 시작해 계속해서 증가한다. 엄청난 초기비용 때문에 채굴업자들은 급등하는 고정비용에도 불구하고 곧장 생산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 이 예에서는 전기료를 다소 낮게 잡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채굴업자가 이렇게 낮은 전기료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비트코인 호황은 앤트마이너(Antminer) S9와 같은 구형 모델이 다시 각광받는 계기가 되었다. 비트코인 가격 상승으로 ‘구형’ 채굴기로도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료가 $0.09/kWh까지 오르면 고성능 전자부품을 사용하거나 운영 비용이 많이 드는 채굴업자들은 채굴 수익성이 계속해서 악화한다.

물론 훨씬 저렴한 가격에 채굴장비를 확보한 채굴업자라면 현재의 상승장에서 계속해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암호화폐 채굴 거대기업 비트메인(Bitmain)은 엄청난 양의 사전 출하 물량을 시장에 풀고 있지만 채굴기 모델을 확보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S19 채굴기는 2020년 말 암호화폐 급등이 본격화되기 전 중고시장에서 $4,500 이하에 거래되었다. 시장에 조기 진입해 2020년 암호화폐 급등세 이전에 채굴장비를 확보한 채굴업자들조차 전기료를 $0.06/kWh로 가정하더라도 $9,084의 C1 비용과 $24,155의 C3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가격이 $50 부근을 상회할 때 S9 채굴기를 확보한 채굴업자들의 경우에는 총비용이 $30,000를 넘지 않는다.

겨울이 왔다

업계 전문가들은 반도체 공급부족이라는 춥고 긴 겨울이 2022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마디로 채굴기 품귀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높은 수요로 인해 수급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면 중고시장에서 구형 채굴기 모델의 가격도 오를 것이다. 하지만 채굴은 많은 판돈과 막대한 자금력이 전부인 게임은 아니다. 해시파워 역시 중요한 문제다. 일부 채굴업체는 해시레이트 약속 이행을 위해 신주 발행을 통해 해시파워를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채굴 열풍은 당분간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치솟는 비트코인 가격은 채굴산업의 미래에 실낱같은 희망을 제공할 뿐이다. 채굴업자들은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에 사로잡혀 있지만 리스크와 기대를 관리하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다. 채굴기 제조업체들은 ‘출하 약속을 이행할 것이냐, 아니면 조만간 디폴트를 선언할 것이냐’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채굴기 제조업체들이 특히 작년 말 이전에 선주문 형태로 채굴기를 헐값에 팔아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디폴트는 그야말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